경영전략 공허한 말잔치가 안 되려면 (한경비즈니스 펌, 박찬희 중앙대 교수)
지식창고(펌글모음) / 2018. 11. 29. 09:42
경영전략에 대한 좋은 글이어서 공유합니다. 한경BUSINESS 펌글입니다.
‘경영전략’ 공허한 말잔치가 안 되려면
테크놀로지 제 1162호 (2018년 03월 07일)
[경영전략]
-근본에 입각해 가려서 생각하고 필요한 곳에 정확히 쓰는 지혜 발휘해야
[한경비즈니스 칼럼=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경영전략은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을 다룬다. 미래를 내다보고 조직의 힘을 모아 위기를 돌파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리더의 일이니 복잡한 숫자를 맞추고 현장의 험한 일에 파묻히는 다른 분야보다 멋있게 보일 수도 있다.
일자리 하나 구하기도 힘든 세상에 옛날 강태공이나 제갈공명 등 대전략가의 지혜를 다루면서 세계를 주름잡는 경쟁 기업과 경영자들을 분석하니 더욱 숭고해 보일 수도 있다. CEO 수준의 조직 관리나 리더십까지 전략의 이름으로 우아함을 더한다. 주요 기업과 경영자에 대한 사례연구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적합해 미디어에서도(적어도 복잡한 통계분석보다는) 반갑게 다뤄준다.
하지만 기업 현장에서는 경영전략이 ‘세상은 변하는데 짜 놓은 계획만 우기면서 바쁜 사람들에게 보고서만 잔뜩 강요하는 일’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경영전략의 이론과 기법들은 유명 컨설팅 업체에 부장급 수십 명의 연봉을 몰아주고 빤한 결론을 꾸미는 데 쓰이는 그럴듯한 말들에 불과하다고 매도되기도 한다.
생산과 영업의 현장이 솔직하게 담기지 않은 우아하고 장대한 전략 계획이 사내 정치의 꼼수에 쓰이는 일이 곳곳에 많고 그러다가 우아한 말만 둥둥 떠다니며 망한 회사도 제법 많아 경영전략에 대한 비판이 나름의 유행이 되고 있다.
◆경영전략의 허와 실
경영전략의 주요 내용이 널리 알려지면서 이제 강·약점 분석(SWOT)을 활용한 전략 계획이나 블루오션 같은 내용은 적어도 기업 현장에서는 일상용어가 됐다. 이런 개념들은 사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델피의 신탁’도 아닌지라 막상 사업에 쓰이기보다 보고서나 홍보 자료를 꾸미는 데 쓰일 때가 더 많다.
‘핵심 역량’이 대표적인 예인데, 잘되면 핵심 역량에 부합해 그렇다더니 망하면 핵심 역량을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핵심 인재와 자금력이 핵심 역량이라고 우기는 이도 있는데, 좋은 사업에는 사람과 돈이 모인다는 경제학의 기본 가정에 비춰 보면 분명히 억지스러운 면도 있다.
경영전략, 나아가 경영학의 주요 이론이 빤한 얘기를 고상하게 꾸미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그리 새롭지는 않다. 니틴 노리아 하버드대 교수와 로버트 에클스 하버드비즈니스스쿨 교수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원래 정보통신의 발달에 따라 기업 조직이 수평적으로 바뀌고 의사결정의 단계도 줄어든다는 연구를 진행하던 중 조직의 적나라한 현실은 ‘이론적 기대’와 달리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받은 연구비가 있는지라 아예 연구의 방향을 바꿔 전략 계획, 구조조정, 조직 구조 개편, 사업 포트폴리오 등의 이론이 기업 현실을 우아한 말로 포장하는 수사적 역할을 수행하며 이것이 언어가 행동과 정체성을 이끄는 실천적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경영의 허상을 넘어서’라는 책을 통해서다(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이미 오래된 관점일 뿐이며 결국 경영 이론이 홍보용 아이템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친 표현도 가능하다).
경영전략이 실제로 기업의 미래 사업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요란한 문서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막대한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 작성한 기업의 장기 비전과 전략 계획이 구체적 사업으로 구현되는 것은 많지 않다.
회사마다, 학교마다 있는 비전과 미래 전략에서 보듯이 특정한 목적을 경영자나 집단이 자신들의 속셈을 전략의 언어로 포장해 들이대는 데 쓰이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헨리 민츠버그 캐나다 맥길대 교수는 전략 계획이 오히려 실제로 일하는 사람의 생각을 의사결정에서 배제하는 관료제적 도구가 돼 버리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미래에 대한 의지가 빠진 단순한 예측이 오히려 미래를 구속해 버리고 막상 일하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지 방향도 잃은 채 할당된 숫자를 억지로 꾸며 맞추느라 세월을 보낸다. 관료화한 기획 부문은 전략 계획을 경영자의 ‘어명(御命)’으로 삼아 권세를 키운다.
경영전략이 구성원의 뜻을 모으는 틀이 아니라 소수의 전략 스태프들의 전유물이 되고 요란하게 꾸민 전략 계획서와 전략 선포식은 그들의 권력을(적어도 최고경영자의 총애를) 확인하는 수단이 된다.
전략의 이름을 붙인 리더십, 조직 관리도 그리 특별한 얘기는 아니다. 제자백가 이후 수없이 반복된 논의들이 제왕학이나 통치술로 오래전에 집약돼 있다. 전쟁은 사업보다 훨씬 치열한 죽고 죽이는 일이므로 전쟁사에는 기술혁신, 조직의 체제와 운용, 물자의 조달, 협력과 연대의 외교 등 매우 구체적 내용을 담은 진짜 전략의 지혜가 무수히 담겨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나 광개토대왕의 정복 전쟁에는 무역과 금융의 패권 전략이 깔려 있고 대륙을 넘나드는 인력과 물자의 배치, 관리체제가 포함돼 있다. 플랫폼 전략이나 글로벌 경영은 이미 수천 년 지난 경영학 책에서만 새로운 일이라는 얘기다.
◆성공한 경영자는 경영학보다 인문학 중시
성공한 창업 경영자 중에서는 경영전략의 주요 내용, 특히 전략 계획을 무시하거나 혐오하는 이가 있다. 현대그룹을 창업한 고 정주영 회장은 전략 기획이나 정보 같은 명칭을 붙인 부서를 모조리 없앤 적도 있다. “도대체 뭘 안다고 미래 전략이 어떻고 계획을 세운다고 설치느냐, 너희들이 함부로 설치고 다니면 정보만 샌다”는 생각 때문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일하는 사람들 위에 펜대를 굴리면서 군림하지 말라는 뜻도 포함돼 있는데, 앞에서 본 전략 계획에 대한 냉소가 듬뿍 담겨 있다. 상당한 수준의 인문적 교양을 갖춘 경영자일수록 경영학에 대해 비판적이다.
삼성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이 손자를 최고경영자로 키우려면 인문학을 공부시키라고 권했다는 얘기도 있는데, 기업인들 중에는 경영학은 필요할 때 잠깐 시간 내 공부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이가 많다.
직접 창업해 기업은 물론 업계의 구석구석을 훤히 아는 경영자만 세상에 있는 것은 아니다. 성장한 기업에서 일정한 상황을 맡아 일하는, 예를 들어 구조조정, 시장 확장, 시스템 구축 등의 역할을 일정 기간 책임지는 전문 경영자는 좀 더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 사업 여건을 위해 전략 계획이 필요할 수도 있다.
사업의 구체적 내용을 모를수록 조직화한 업무 분장과 보고 체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신출귀몰한 창업 경영자라도 어느 시점에서는 새로운 사업을 위해 혹은 조직화한 경영으로 전환하기 위해 전략을 다룰 수 있는 스태프를 구할 수도 있다.
사업이 크고 복잡해질수록 구성원의 생각과 능력을 모아가는 일이 더 어려워지는데, 전략 계획은 이를 위한 절차적 장치이고 전략 경영의 주요 개념은 소통을 위한 공유된 언어의 역할을 한다.
부족하나마 전략 계획이나 정보를 꾸준히 다루면서 실력과 경험을 쌓아야 전략을 다루는 조직 전체의 역량이 확보된다. 천재는 공부를 안 해도 되지만 모든 분야에서 다 천재일 수 없고 재능도 변한다. 결국 공부는 필요하다는 상식과 다르지 않다.
◆환상도 무지도 금물
만병통치약이라고 주장하는 약이 대부분 사기이고 요란하게 포장한 과자가 먹을 것 없듯이 경영전략의 개념과 기법도 환상은 금물이다. 우아한 말에 휘둘려 쓸데없는 짓이나 잔뜩 벌이면 곤란하지만 제대로 들어맞는 곳에 필요한 만큼 쓰면 도움이 된다. 그럴듯한 말이라고 비난하기 전에 그런 말이 갖는 힘도 인정해야 한다.
전략 계획이 억지로 짜 맞춘 숫자로 사람들을 얽매는 짓이 될 수도 있지만 창의적 생각과 행동이 경영자의 전략 방향과 통합해 가는 과정으로 쓰인다면 제 나름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것이 바워-버글만 전략 모델의 핵심이다. 핵심 역량이든 SWOT의 강점 분석이든 잘하는 일과 못하는 일만 나눠 생각해 보면 될 일이지 잘 알지도 못하는, 논문 쓰자고 우겨댄 선입견과 왜곡이 가득한 이론들을 들이댈 필요는 없다.
경영전략에 나오는 주요 개념과 기법은 사실 경제학·사회학 혹은 공학의 이론들을 경영 현실에 맞춰 정리한 것이다. 구체적 사업 현실을 모르면 아무리 이론을 잘 알아도 쓸 수가 없다.
그 이론 자체도 기초가 되는 사회과학·자연과학의 핵심을 알지 못하면 잔재주에 그치게 된다. 일정한 전략적 상황을 정리해 경영자의 핵심적 의제를 제시하도록 나름의 체계를 짜 맞춘 이론들을 이것저것 마구 섞어 떠들면 마치 야구 중계하면서 축구공 얘기하는 꼴이 된다. 주워들은 말만 둥둥 떠다니게 된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의 경쟁 전략은 산업 구조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을 정리해 어떤 산업이 돈 벌 기회가 있는지 보여준다. 산업의 동태적 변화를 읽지 못하면 아무리 모델을 외워도 소용이 없다. 원가 우위와 차별화를 나눠 보는 ‘본원적 전략’은 각각 가격 경쟁과 차별적 경쟁이라는 다른 상황을 전제하는 것이다. 프리미엄 전략만 차별화에 해당된다는 등 황당한 억지 주장을 가르치고 시험도 본다.
전략적 제휴는 이미 다양한 협력과 경쟁의 관계에서 어떻게 가치가 만들어지는지 보여주는 이론들이 많이 나와 있다. 서로 다른 사업이 연결되면서 발생하는 교차 네트워크 효과와 사용자 기반이 확대되면서 발생하는 네트워크 효과를 설명하는 플랫폼 전략의 연구들이 대표적이다. 무작정 ‘제휴 파트너의 의도’ 운운하는 빤한 소리를 하느니 동서고금의 국제 관계사를 살펴보는 편이 낫다.
경영전략의 개념과 기법에 구체적 현실을 거꾸로 짜 맞추거나 한 가지 잘 안다고 혹은 유행하는 모델이라고 아무 데나 들이댄다면 침대에 키를 맞추고 도끼로 손톱을 깎는다고 우기는 셈이다.
전략과 비전이 구체적 현실에서 얻는 경험과 통찰과 유리된 채 문서로만 날아다닌다면 기업 관료들의 밥거리가 되고 만다. 근본에 입각해 가려서 생각하고 필요한 곳에 정확히 쓰는 것은 결국 경영자의 몫이다. 기업 관료와 전문가의 우아한 말에 휘둘리는 경영자는 빨리 집으로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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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전략’ 공허한 말잔치가 안 되려면
테크놀로지 제 1162호 (2018년 03월 07일)
[경영전략]
-근본에 입각해 가려서 생각하고 필요한 곳에 정확히 쓰는 지혜 발휘해야
[한경비즈니스 칼럼=박찬희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경영전략은 최고경영자(CEO)의 역할을 다룬다. 미래를 내다보고 조직의 힘을 모아 위기를 돌파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리더의 일이니 복잡한 숫자를 맞추고 현장의 험한 일에 파묻히는 다른 분야보다 멋있게 보일 수도 있다.
일자리 하나 구하기도 힘든 세상에 옛날 강태공이나 제갈공명 등 대전략가의 지혜를 다루면서 세계를 주름잡는 경쟁 기업과 경영자들을 분석하니 더욱 숭고해 보일 수도 있다. CEO 수준의 조직 관리나 리더십까지 전략의 이름으로 우아함을 더한다. 주요 기업과 경영자에 대한 사례연구는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적합해 미디어에서도(적어도 복잡한 통계분석보다는) 반갑게 다뤄준다.
하지만 기업 현장에서는 경영전략이 ‘세상은 변하는데 짜 놓은 계획만 우기면서 바쁜 사람들에게 보고서만 잔뜩 강요하는 일’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경영전략의 이론과 기법들은 유명 컨설팅 업체에 부장급 수십 명의 연봉을 몰아주고 빤한 결론을 꾸미는 데 쓰이는 그럴듯한 말들에 불과하다고 매도되기도 한다.
생산과 영업의 현장이 솔직하게 담기지 않은 우아하고 장대한 전략 계획이 사내 정치의 꼼수에 쓰이는 일이 곳곳에 많고 그러다가 우아한 말만 둥둥 떠다니며 망한 회사도 제법 많아 경영전략에 대한 비판이 나름의 유행이 되고 있다.
◆경영전략의 허와 실
경영전략의 주요 내용이 널리 알려지면서 이제 강·약점 분석(SWOT)을 활용한 전략 계획이나 블루오션 같은 내용은 적어도 기업 현장에서는 일상용어가 됐다. 이런 개념들은 사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델피의 신탁’도 아닌지라 막상 사업에 쓰이기보다 보고서나 홍보 자료를 꾸미는 데 쓰일 때가 더 많다.
‘핵심 역량’이 대표적인 예인데, 잘되면 핵심 역량에 부합해 그렇다더니 망하면 핵심 역량을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핵심 인재와 자금력이 핵심 역량이라고 우기는 이도 있는데, 좋은 사업에는 사람과 돈이 모인다는 경제학의 기본 가정에 비춰 보면 분명히 억지스러운 면도 있다.
경영전략, 나아가 경영학의 주요 이론이 빤한 얘기를 고상하게 꾸미는 데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 그리 새롭지는 않다. 니틴 노리아 하버드대 교수와 로버트 에클스 하버드비즈니스스쿨 교수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원래 정보통신의 발달에 따라 기업 조직이 수평적으로 바뀌고 의사결정의 단계도 줄어든다는 연구를 진행하던 중 조직의 적나라한 현실은 ‘이론적 기대’와 달리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받은 연구비가 있는지라 아예 연구의 방향을 바꿔 전략 계획, 구조조정, 조직 구조 개편, 사업 포트폴리오 등의 이론이 기업 현실을 우아한 말로 포장하는 수사적 역할을 수행하며 이것이 언어가 행동과 정체성을 이끄는 실천적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경영의 허상을 넘어서’라는 책을 통해서다(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이미 오래된 관점일 뿐이며 결국 경영 이론이 홍보용 아이템에 지나지 않는다는 거친 표현도 가능하다).
경영전략이 실제로 기업의 미래 사업 방향을 제시하고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요란한 문서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막대한 인력과 자원을 투입해 작성한 기업의 장기 비전과 전략 계획이 구체적 사업으로 구현되는 것은 많지 않다.
회사마다, 학교마다 있는 비전과 미래 전략에서 보듯이 특정한 목적을 경영자나 집단이 자신들의 속셈을 전략의 언어로 포장해 들이대는 데 쓰이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헨리 민츠버그 캐나다 맥길대 교수는 전략 계획이 오히려 실제로 일하는 사람의 생각을 의사결정에서 배제하는 관료제적 도구가 돼 버리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미래에 대한 의지가 빠진 단순한 예측이 오히려 미래를 구속해 버리고 막상 일하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지 방향도 잃은 채 할당된 숫자를 억지로 꾸며 맞추느라 세월을 보낸다. 관료화한 기획 부문은 전략 계획을 경영자의 ‘어명(御命)’으로 삼아 권세를 키운다.
경영전략이 구성원의 뜻을 모으는 틀이 아니라 소수의 전략 스태프들의 전유물이 되고 요란하게 꾸민 전략 계획서와 전략 선포식은 그들의 권력을(적어도 최고경영자의 총애를) 확인하는 수단이 된다.
전략의 이름을 붙인 리더십, 조직 관리도 그리 특별한 얘기는 아니다. 제자백가 이후 수없이 반복된 논의들이 제왕학이나 통치술로 오래전에 집약돼 있다. 전쟁은 사업보다 훨씬 치열한 죽고 죽이는 일이므로 전쟁사에는 기술혁신, 조직의 체제와 운용, 물자의 조달, 협력과 연대의 외교 등 매우 구체적 내용을 담은 진짜 전략의 지혜가 무수히 담겨 있다.
알렉산더 대왕이나 광개토대왕의 정복 전쟁에는 무역과 금융의 패권 전략이 깔려 있고 대륙을 넘나드는 인력과 물자의 배치, 관리체제가 포함돼 있다. 플랫폼 전략이나 글로벌 경영은 이미 수천 년 지난 경영학 책에서만 새로운 일이라는 얘기다.
◆성공한 경영자는 경영학보다 인문학 중시
성공한 창업 경영자 중에서는 경영전략의 주요 내용, 특히 전략 계획을 무시하거나 혐오하는 이가 있다. 현대그룹을 창업한 고 정주영 회장은 전략 기획이나 정보 같은 명칭을 붙인 부서를 모조리 없앤 적도 있다. “도대체 뭘 안다고 미래 전략이 어떻고 계획을 세운다고 설치느냐, 너희들이 함부로 설치고 다니면 정보만 샌다”는 생각 때문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일하는 사람들 위에 펜대를 굴리면서 군림하지 말라는 뜻도 포함돼 있는데, 앞에서 본 전략 계획에 대한 냉소가 듬뿍 담겨 있다. 상당한 수준의 인문적 교양을 갖춘 경영자일수록 경영학에 대해 비판적이다.
삼성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이 손자를 최고경영자로 키우려면 인문학을 공부시키라고 권했다는 얘기도 있는데, 기업인들 중에는 경영학은 필요할 때 잠깐 시간 내 공부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이가 많다.
직접 창업해 기업은 물론 업계의 구석구석을 훤히 아는 경영자만 세상에 있는 것은 아니다. 성장한 기업에서 일정한 상황을 맡아 일하는, 예를 들어 구조조정, 시장 확장, 시스템 구축 등의 역할을 일정 기간 책임지는 전문 경영자는 좀 더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 사업 여건을 위해 전략 계획이 필요할 수도 있다.
사업의 구체적 내용을 모를수록 조직화한 업무 분장과 보고 체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신출귀몰한 창업 경영자라도 어느 시점에서는 새로운 사업을 위해 혹은 조직화한 경영으로 전환하기 위해 전략을 다룰 수 있는 스태프를 구할 수도 있다.
사업이 크고 복잡해질수록 구성원의 생각과 능력을 모아가는 일이 더 어려워지는데, 전략 계획은 이를 위한 절차적 장치이고 전략 경영의 주요 개념은 소통을 위한 공유된 언어의 역할을 한다.
부족하나마 전략 계획이나 정보를 꾸준히 다루면서 실력과 경험을 쌓아야 전략을 다루는 조직 전체의 역량이 확보된다. 천재는 공부를 안 해도 되지만 모든 분야에서 다 천재일 수 없고 재능도 변한다. 결국 공부는 필요하다는 상식과 다르지 않다.
◆환상도 무지도 금물
만병통치약이라고 주장하는 약이 대부분 사기이고 요란하게 포장한 과자가 먹을 것 없듯이 경영전략의 개념과 기법도 환상은 금물이다. 우아한 말에 휘둘려 쓸데없는 짓이나 잔뜩 벌이면 곤란하지만 제대로 들어맞는 곳에 필요한 만큼 쓰면 도움이 된다. 그럴듯한 말이라고 비난하기 전에 그런 말이 갖는 힘도 인정해야 한다.
전략 계획이 억지로 짜 맞춘 숫자로 사람들을 얽매는 짓이 될 수도 있지만 창의적 생각과 행동이 경영자의 전략 방향과 통합해 가는 과정으로 쓰인다면 제 나름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것이 바워-버글만 전략 모델의 핵심이다. 핵심 역량이든 SWOT의 강점 분석이든 잘하는 일과 못하는 일만 나눠 생각해 보면 될 일이지 잘 알지도 못하는, 논문 쓰자고 우겨댄 선입견과 왜곡이 가득한 이론들을 들이댈 필요는 없다.
경영전략에 나오는 주요 개념과 기법은 사실 경제학·사회학 혹은 공학의 이론들을 경영 현실에 맞춰 정리한 것이다. 구체적 사업 현실을 모르면 아무리 이론을 잘 알아도 쓸 수가 없다.
그 이론 자체도 기초가 되는 사회과학·자연과학의 핵심을 알지 못하면 잔재주에 그치게 된다. 일정한 전략적 상황을 정리해 경영자의 핵심적 의제를 제시하도록 나름의 체계를 짜 맞춘 이론들을 이것저것 마구 섞어 떠들면 마치 야구 중계하면서 축구공 얘기하는 꼴이 된다. 주워들은 말만 둥둥 떠다니게 된다.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의 경쟁 전략은 산업 구조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을 정리해 어떤 산업이 돈 벌 기회가 있는지 보여준다. 산업의 동태적 변화를 읽지 못하면 아무리 모델을 외워도 소용이 없다. 원가 우위와 차별화를 나눠 보는 ‘본원적 전략’은 각각 가격 경쟁과 차별적 경쟁이라는 다른 상황을 전제하는 것이다. 프리미엄 전략만 차별화에 해당된다는 등 황당한 억지 주장을 가르치고 시험도 본다.
전략적 제휴는 이미 다양한 협력과 경쟁의 관계에서 어떻게 가치가 만들어지는지 보여주는 이론들이 많이 나와 있다. 서로 다른 사업이 연결되면서 발생하는 교차 네트워크 효과와 사용자 기반이 확대되면서 발생하는 네트워크 효과를 설명하는 플랫폼 전략의 연구들이 대표적이다. 무작정 ‘제휴 파트너의 의도’ 운운하는 빤한 소리를 하느니 동서고금의 국제 관계사를 살펴보는 편이 낫다.
경영전략의 개념과 기법에 구체적 현실을 거꾸로 짜 맞추거나 한 가지 잘 안다고 혹은 유행하는 모델이라고 아무 데나 들이댄다면 침대에 키를 맞추고 도끼로 손톱을 깎는다고 우기는 셈이다.
전략과 비전이 구체적 현실에서 얻는 경험과 통찰과 유리된 채 문서로만 날아다닌다면 기업 관료들의 밥거리가 되고 만다. 근본에 입각해 가려서 생각하고 필요한 곳에 정확히 쓰는 것은 결국 경영자의 몫이다. 기업 관료와 전문가의 우아한 말에 휘둘리는 경영자는 빨리 집으로 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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